이수인 선생님 인터뷰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3-10-20 00:15본문
이수인 선생님 인터뷰
이수인 선생님께서는 현재 파랑새 창작동요회 회장으로 계신다.
8월22일 이수인 선생님 댁을 방문하여 인터뷰라는 딱딱한 형식 보다는 다정하신 스승과 궁금한 것이 많은 제자 같은 대화로 시작하였다.
(인터뷰- 조원경 , 사진- 최경숙)
조원경: 선생님께서는 작곡가의 꿈은 언제부터 가지고 계셨는지요?
어릴 때의 꿈도 작곡가셨나요?
이수인 : 아니 그렇지는 않았어. 어린시절에 교회를 다니시면서 피아노를 독학으로 치게 되었고 마산고등학교시절에 LP판으로 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온 몸에 전율을 느낄 정도로 음악이 너무 좋아서 내가 살고 있는 마산에서 부산까지 클래식 음악회를 관람하러 가는 등 아주 정열적으로 음악을 좋아했지. 내가 음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된 것이 클래식음악이었어.
작곡은 서라벌예대 재학 시절에 예술가곡을 작곡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였고 처음에는 예술가곡 작곡을 많이 했지.
1963년에 '별' (이병기 작사)을 가곡으로 발표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그 곡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서 참 행복하지.
그 후에도 난 예술가곡을 많이 만들게 되어서 1965년에 가곡집을 출판하게 되었고 동요는 대학졸업 후에 서울의 KBS방송국의 어린이합창단을 지휘하면서부터 동요를 많이 만들기 시작한 거라구.
조: '별'은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고 명곡 중의 명곡이며 국민 가곡이지요. 선생님의 곡은 '고향의 노래', '내 맘의 강물' , '국화 옆에서', '석굴암' 등 유명한 가곡이 참 많으신데요. 혹시 가곡을 몇 곡이나 작곡하셨을까요?
이: 100곡 정도 되지. 동요도 많이 작곡했지만 가곡 작곡을 많이 했고 그중에서 '별'이 가장 아끼는 곡이지. 난 아직도 작곡을 하는 것이 즐겁다구~.
그리고 3개월에 한번씩 가곡애호가들이 우리집에 모여서 가곡음악회를 하고 있는데 '성산살롱 음악회'로 이름 붙이고 열정적으로 가곡을 부르며 음악회를 하고 있으니까 언제라도 시간되면 구경하러 와.
조: 네 그럴께요. 예전에는 매주 토요일 마다 동요를 좋아하는 어른들과 가창지도 선생님과 어린이, 작곡가 등 한 40명 정도씩 선생님댁에 모여서 동요를 집이 떠나가도록 불렀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요즘은 선생님댁에서 가곡이 울려퍼지네요~.
동요로서의 첫 곡은 어떤 곡인지, 동요작곡을 많이 하셨던 때를 소개해 주세요.
이: 동요작곡의 첫 작품은 "아무도 오지 않는 깊은 산속에~~' 하는 '방울꽃' (임교순 작사)이고 가장 활동이 왕성하셨던 시기는 KBS에서 어린이 합창단 지휘를 했던 시절이야. 1969년에 아폴로 우주선 발사가 되어 달나라에 도착하는 것을 보고 윤석중 선생님이 '앞으로 앞으로' 를 작사 하셨는데 거기에 내가 곡을 붙였지.
내 노래가 그 유명한 연고전의 응원가로도 쓰였는데 연세대학교에서는 '둥글게 둥글게' , 고려대학교에서는 '앞으로 앞으로'에 맞춰 대학생들이 응원을
하는 재미스런 일도 있었어.
조: 작곡하실 때 제일 염두해 두는 점이 있으실까요?
이: 뭐 특별한 거는 없고 가사 분위기에 맞게 작곡을 하는 거지.
가사내용이 뭘 말하는지를 선율로 나타내는 거야.
조: 선생님께서는 세광음악 출판사에서 동요피아노 책도 펴내시고 수많은 악보집 등 저서가 많으시지요?
이: 이수인 가곡집, 새 합창곡집, 학생 합창곡집, 한국 서정 가곡선 등등 많이 있지. 그중에 새 동요 피아노 곡집은 조선생도 피아노 배울 때 쓰지 않았을까?
조: 네 맞아요. 빨간색 표지로 된 책이었는데 저도 그 책으로 피아노를 치며 자랐었어요. 아마도 피아노 배우는 어린이들은 그 책을 학습하지 않은 친구들이 없을 걸요?
선생님께서는 고향이 마산출신이시라 매년 마산에서 선생님을 위해 음악회를 마련하여 주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소개 좀 해주세요.
이: 고맙게도 내가 작곡한 곡을 레파토리로 해서 '이수인 가곡의 밤'을 열어주고 있지. 마산시가 주최가 되고 경남오페라단이 주관하는 건데 매년 초청되어 가지요. 올해에도 벌써 날짜가 정해서 연락이 왔더라구.
11월14일(목) 산으로 문화예술회관.
조: 정말 행복하시겠어요. 요즘 동요의 흐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 매스컴에서 동요프로그램이 줄어들어서 문제야. 우리의 미래, 어린이의 미래를 위해 공부를 시키고 지식을 쌓게 하는 것처럼 동요를 많이 부르게 하여 좋은 정서를 가르쳐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공영방송에서 조차 어린이의 정서를 키우는 동요프로그램이 외면당하고 있으니 한국의 큰 병폐로 생각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어요. 동요프로그램은 시청률을 따지지 않고 방송을 해야 하는 거지.
이것은 어린이에게 꿈을 심어주는 중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필요조건을 충족시키는 일이기도 하니까.
조: 동요 작곡을 하는 후배들에게도 한 말씀 해주세요.
이: 후세에 동요역사가 꾸며지려면 동요하는 사람들은 사명감이 있어야 해. 사명감을 가지고 동요작곡을 하면 좋겠고 최근에 발표되는 동요들은 화성이나 선율, 리듬이 다양하고 발전적이기는 하지만 정서적으로 좀 차분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유행동요처럼 반짝 왔다가 사라지는 동요 말고 정서적으로 꾸준히 애창 되고 사랑받는 곡들을 많이 만드세요.
조: 긴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래도록 건강하신 모습 뵙기를 원합니다.
최근에 잦은 병원 출입으로인해 피곤하고 힘드셨을 텐데 인터뷰 내내 피곤하신 기색 없이 편안하게 인터뷰에 응해 주셨다.
동요계의 큰 별로서 후배들의 등대가 되어 주소서.
이수인 선생님께서는 현재 파랑새 창작동요회 회장으로 계신다.
8월22일 이수인 선생님 댁을 방문하여 인터뷰라는 딱딱한 형식 보다는 다정하신 스승과 궁금한 것이 많은 제자 같은 대화로 시작하였다.
(인터뷰- 조원경 , 사진- 최경숙)
조원경: 선생님께서는 작곡가의 꿈은 언제부터 가지고 계셨는지요?
어릴 때의 꿈도 작곡가셨나요?
이수인 : 아니 그렇지는 않았어. 어린시절에 교회를 다니시면서 피아노를 독학으로 치게 되었고 마산고등학교시절에 LP판으로 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온 몸에 전율을 느낄 정도로 음악이 너무 좋아서 내가 살고 있는 마산에서 부산까지 클래식 음악회를 관람하러 가는 등 아주 정열적으로 음악을 좋아했지. 내가 음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된 것이 클래식음악이었어.
작곡은 서라벌예대 재학 시절에 예술가곡을 작곡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였고 처음에는 예술가곡 작곡을 많이 했지.
1963년에 '별' (이병기 작사)을 가곡으로 발표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그 곡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서 참 행복하지.
그 후에도 난 예술가곡을 많이 만들게 되어서 1965년에 가곡집을 출판하게 되었고 동요는 대학졸업 후에 서울의 KBS방송국의 어린이합창단을 지휘하면서부터 동요를 많이 만들기 시작한 거라구.
조: '별'은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고 명곡 중의 명곡이며 국민 가곡이지요. 선생님의 곡은 '고향의 노래', '내 맘의 강물' , '국화 옆에서', '석굴암' 등 유명한 가곡이 참 많으신데요. 혹시 가곡을 몇 곡이나 작곡하셨을까요?
이: 100곡 정도 되지. 동요도 많이 작곡했지만 가곡 작곡을 많이 했고 그중에서 '별'이 가장 아끼는 곡이지. 난 아직도 작곡을 하는 것이 즐겁다구~.
그리고 3개월에 한번씩 가곡애호가들이 우리집에 모여서 가곡음악회를 하고 있는데 '성산살롱 음악회'로 이름 붙이고 열정적으로 가곡을 부르며 음악회를 하고 있으니까 언제라도 시간되면 구경하러 와.
조: 네 그럴께요. 예전에는 매주 토요일 마다 동요를 좋아하는 어른들과 가창지도 선생님과 어린이, 작곡가 등 한 40명 정도씩 선생님댁에 모여서 동요를 집이 떠나가도록 불렀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요즘은 선생님댁에서 가곡이 울려퍼지네요~.
동요로서의 첫 곡은 어떤 곡인지, 동요작곡을 많이 하셨던 때를 소개해 주세요.
이: 동요작곡의 첫 작품은 "아무도 오지 않는 깊은 산속에~~' 하는 '방울꽃' (임교순 작사)이고 가장 활동이 왕성하셨던 시기는 KBS에서 어린이 합창단 지휘를 했던 시절이야. 1969년에 아폴로 우주선 발사가 되어 달나라에 도착하는 것을 보고 윤석중 선생님이 '앞으로 앞으로' 를 작사 하셨는데 거기에 내가 곡을 붙였지.
내 노래가 그 유명한 연고전의 응원가로도 쓰였는데 연세대학교에서는 '둥글게 둥글게' , 고려대학교에서는 '앞으로 앞으로'에 맞춰 대학생들이 응원을
하는 재미스런 일도 있었어.
조: 작곡하실 때 제일 염두해 두는 점이 있으실까요?
이: 뭐 특별한 거는 없고 가사 분위기에 맞게 작곡을 하는 거지.
가사내용이 뭘 말하는지를 선율로 나타내는 거야.
조: 선생님께서는 세광음악 출판사에서 동요피아노 책도 펴내시고 수많은 악보집 등 저서가 많으시지요?
이: 이수인 가곡집, 새 합창곡집, 학생 합창곡집, 한국 서정 가곡선 등등 많이 있지. 그중에 새 동요 피아노 곡집은 조선생도 피아노 배울 때 쓰지 않았을까?
조: 네 맞아요. 빨간색 표지로 된 책이었는데 저도 그 책으로 피아노를 치며 자랐었어요. 아마도 피아노 배우는 어린이들은 그 책을 학습하지 않은 친구들이 없을 걸요?
선생님께서는 고향이 마산출신이시라 매년 마산에서 선생님을 위해 음악회를 마련하여 주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소개 좀 해주세요.
이: 고맙게도 내가 작곡한 곡을 레파토리로 해서 '이수인 가곡의 밤'을 열어주고 있지. 마산시가 주최가 되고 경남오페라단이 주관하는 건데 매년 초청되어 가지요. 올해에도 벌써 날짜가 정해서 연락이 왔더라구.
11월14일(목) 산으로 문화예술회관.
조: 정말 행복하시겠어요. 요즘 동요의 흐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 매스컴에서 동요프로그램이 줄어들어서 문제야. 우리의 미래, 어린이의 미래를 위해 공부를 시키고 지식을 쌓게 하는 것처럼 동요를 많이 부르게 하여 좋은 정서를 가르쳐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공영방송에서 조차 어린이의 정서를 키우는 동요프로그램이 외면당하고 있으니 한국의 큰 병폐로 생각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어요. 동요프로그램은 시청률을 따지지 않고 방송을 해야 하는 거지.
이것은 어린이에게 꿈을 심어주는 중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필요조건을 충족시키는 일이기도 하니까.
조: 동요 작곡을 하는 후배들에게도 한 말씀 해주세요.
이: 후세에 동요역사가 꾸며지려면 동요하는 사람들은 사명감이 있어야 해. 사명감을 가지고 동요작곡을 하면 좋겠고 최근에 발표되는 동요들은 화성이나 선율, 리듬이 다양하고 발전적이기는 하지만 정서적으로 좀 차분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유행동요처럼 반짝 왔다가 사라지는 동요 말고 정서적으로 꾸준히 애창 되고 사랑받는 곡들을 많이 만드세요.
조: 긴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래도록 건강하신 모습 뵙기를 원합니다.
최근에 잦은 병원 출입으로인해 피곤하고 힘드셨을 텐데 인터뷰 내내 피곤하신 기색 없이 편안하게 인터뷰에 응해 주셨다.
동요계의 큰 별로서 후배들의 등대가 되어 주소서.
